☆ 풍금이 있던 자리 ☆

나태주 - 대숲 아래서 -

푸르른가을 2011. 6. 10. 00:26

   1.
바람은 구름을 몰고
구름은 생각을 몰고
다시 생각은 대숲을 몰고
대숲 아래서 내 마음은 낙엽을 몬다.

            2.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
그을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
밤 깊어 대숲에는 후둑이다 가는 밤 소나기 소리
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 소리.

          3.
어제는 보고 싶다 편지 쓰고
어젯밤 꿈엔 너를 만나 쓰러져 울었다.
자고 나니 눈두덩엔 메마른 눈물 자죽,
문을 여니 산골엔 실비단 안개.

          4.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가을,
해 지는 서녘 구름만이 내 차지다.
동구 밖에 떠도는 애들의
소리만이 내 차지다.
또한 동구 밖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밤안개만이 내 차지다.

하기는 모두가 내 것만은 아닌 것도 아닌
이 가을,
저녁밥 일찍이 먹고
우물가에 산보 나온
달님만이 내 차지다.
물에 빠져 머리칼 헹구는
달님만이 내 차지다.
                              - <서울신문>(1971) -

#. 노래로도 만든것 같은데,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한번 들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