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금이 있던 자리 ☆

이 외수님의 시들

푸르른가을 2010. 11. 2. 18:02



사랑은 / 이외수 
하고 있는 순간에도 
하지 않은 순간에도 
언제나 눈물겹다 

부끄럽지 않은 것.. 
흐르는 시간 앞에 후회하지 않는 것.. 
험난한 일이 앞에 닥쳐도 두렵지 않는 것.. 

창피하지 않는 것.. 
몇날 며칠을 굶어도 배고프지 않는 것.. 

막연히 기대하지 않는 것.. 
서로간에 자존심에 빌딩을 쌓지 않는 것.. 

허물없이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것.. 
가랑비처럼 내 옷을 서서히 적시는 것.. 

온 세상을 아름답게 간직하게 해주는 것.. 
어두운 곳에서도 은은하게 밝은 빛을 내 주는 것.. 
삶의 희망과 빛을 스며들게 하는 것.. 

그래서 
밤하늘에 기대하지 않았던 별이 
내 앞에 떨어지는 것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생각하지 않아도 무심결에 오는 것.. 

간절한 소망 / 이외수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도 아름다운 자이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도 
아름다운 자입니다. 

그리고 조금만 생각의 깊이를 더해도 이내 
깨닫게 됩니다.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도 행복한 자이며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도 행복한 자라는 사실을. 

인간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말은 누구나 사랑을 주고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는 말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간절하다고 모든 소망이 성사되지는 않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은 사랑을 느낄 수 없으며 
사랑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은 행복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 이외수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비로소 내 가슴에 박혀 있는 
모난 돌들이 보인다 
결국 슬프고 
외로운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라고 
흩날리는 물보라에 날개 적시며 
갈매기 한 마리 
지워진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파도는 목놓아 울부짖는데 
시간이 거대한 시체로 
백사장에 누워 있다 
부끄럽다 
나는 왜 하찮은 일에도 
쓰라린 상처를 입고 
막다른 골목에서 
쓰러져 울고 있었던가 

그만 잊어야겠다 
지나간 날들은 비록 억울하고 
비참했지만 
이제 뒤돌아보지 말아야겠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저 거대한 바다에는 분명 
내가 흘린 눈물도 몇 방울 
그때의 순순한 아픔 그대로 
간직되어 있나니 
이런 날은 견딜 수 없는 몸살로 
출렁거리나니 

그만 잊어야겠다 
흐린 날 바다에 나가 보면 
우리들의 인연은 아직 다 하지 않았는데 
죽은 시간이 해체되고 있다 

더 깊은 눈물 속으로 
더 깊은 눈물 속으로 
그대의 모습도 해체되고 있다 






바위를 위한 노래 / 이외수 
날개가 없다고 어찌 
비상을 꿈꾸지 않으랴

천만년 한 자리에 붙박혀 사는 바위도
날마다 무한창공을
바라보나니
기다리는 일은 
사랑하는 일보다 눈물겹더라

허연 거품을 물고 실신하는 바람
절망하고
눈보라에 속절없이 매몰되는 바다
절망하고
겨울에는 사랑보다 
증오가 깊어지더라

지금은 작은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무덤이더라
그래도 천만년 
스쳐가는 인연마다 살을 헐며
날마다 무한창공을
바라보나니

언젠가는 
가벼운 먼지 한 점으로
부유하는 그 날까지
날개가 없다고 
어찌 비상을 꿈꾸지 않으랴  








그림, 글/이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