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가고 싶다

[스크랩] [전남 고흥] 자운영 들판

푸르른가을 2010. 4. 4. 08:20

[전남 고흥] 자운영 들판



소에 쟁기를 달고 밭을 갈듯 조개를 캐는 이색적인 남열해수욕장의 정겨운 풍경.


고흥 영남면 양사리 일대에는 자운영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오른쪽 사진은 마음을 비워내기 좋은 봉래산 삼나무숲.


쌀가루처럼 고운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남열해수욕장.
길을 달리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주색 작은 꽃들이 들판 가득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었다.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논과 밭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융단으로 뒤덮여 있었다. 길을 멈추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봄볕에 보풀어 오른 흙을 일구며 씨를 뿌리고 있던 농부에게 물었다. “이 꽃 이름이 뭐죠?” 농부는 꽃밭을 한 번 휘이 둘러보더니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답했다. “자운영이랍니다.” 전남 고흥, 그 남쪽바다 가는 길에는 자운영이 한창 봄과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원래 자운영 꽃밭을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고흥군 영남면 남열리 봄바다를 보기 위해 달리던 길. 그런데 자운영이 그저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다.

고흥 어디에서나 자운영을 볼 수는 있지만 강산리, 양사리 등 영남면 일대에 특히 많다. 자운영은 논과 밭, 풀밭 등에서 자라는 꽃으로 해열, 해독작용을 하는 약용식물이다. 처음에는 이곳 자운영들도 그런 목적이겠거니 했다. 자운영 꽃밭 몇 개를 지나칠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약용재배로 보기엔 너무 많은 꽃밭들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곳의 자운영은 바로 ‘녹비’(풋거름)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란다. 봄에 일찍 자운영 씨를 뿌려두었다가 꽃이 피면 그것을 갈아엎어 논의 거름으로 쓴다는 것이다. 자운영은 꽃을 피워야 비로소 거름이 된다고 한다. 꽃은 5월까지 피는데 모내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이곳에서 볼 수 있다.

그 의도야 어쨌든 자운영은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수㎞에 걸쳐 펼쳐진 자운영꽃밭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다. 게다가 자운영꽃밭에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없다. 누구나 마음껏 그 꽃밭 한가운데로 들어가 추억을 쌓아도 뭐라 하는 사람 하나 없다. 이 일대는 워낙 한적한 동네들이라 사람 몸살을 앓을 일도 없다. 조용히 봄을 즐기고 싶다면 고흥 영남면 자운영꽃밭으로 길을 잡아보자.

자운영의 유혹을 간신히 뿌리치고 남열리로 달린다. 양사리에서 남열리까지는 10여 분 거리. 이 길은 고흥의 숨겨진 드라이브코스 중 하나다. 왼쪽으로는 우미산이, 오른쪽으로는 해창만이 펼쳐진 해안도로. 산은 칙칙한 옷을 벗고 산뜻한 초록색으로 갈아입었고 바다는 더 없이 푸르다.

남열리에 거의 다 이르렀을 때 오른편으로 ‘태양의 섬’이라는 작은 이정표가 보인다. 그 이름 때문에 괜히 궁금해진다. 항로에서 잠시 벗어나 이정표가 알려주는 그 섬을 찾아 나섰다. 급한 경사의 시멘트길을 내려가니 작은 방파제가 있다. 그런데 그 섬에 대한 어떤 설명도 없다. 혹시 펜션이나 카페 이름인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지만 아무 것도 없다.

마침 방파제 앞에 중년의 부부가 있어 그들에게 물으니 ‘태양의 섬’은 방파제 바로 앞에 떠 있는 진짜 섬이란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곳에 산다고 했다. ‘태양의 섬’의 원래 이름은 ‘옥대도’. 임금님이 허리에 두른 혁대를 닮았다고 해서 그리 불렸다. 섬 가운데가 띠 형태로 갈라져 있다고 한다. 섬에는 펜션이 하나 있는데 이 부부가 운영 하고 있다. 서울에서 손님들이 온다고 해서 급히 이곳으로 마중을 나왔다는 부부는 약속 시간보다 미리 나와 봄바다를 즐기는 중이었다.

다시 길머리를 잡아 남열리로 향한다. 남열리는 전형적인 어촌마을. 마을 앞부터 굴껍데기를 쌓아 놓은 꾸러미들이 널려 있고, 따뜻한 봄볕에 바짝 말린 미역줄기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남열리는 요즘 바닷일로 바쁘다. 날씨가 따뜻해 조개를 잡고 미역을 따기 딱 좋다. 이곳은 조개 잡는 방법이 상당히 특이하다. 호미로 모래를 파고 조개를 캐는 것이 보통. 하지만 이곳에서는 소와 쟁기를 이용한다. 밭을 갈듯 쟁기를 매단 소가 모래사장을 갈아엎는 것이다.

경험이 많은지 소들은 바닷물이 밀려오는데도 겁먹지 않고 주인이 부리는 대로 잘도 앞으로 나아간다. 두 마리의 소가 앞뒤로 쟁기를 달고 나아가면 사람들은 굵은 조개를 힘들이지 않고 하나씩 줍는다.

남열리는 참조개로 유명한 곳이다. 흔히 백합이라고 하는 참조개는 요즘이 산란기. 씨알이 굵어져 거의 어른 주먹만 한 것들이 쟁기가 지나간 자리에서 줄줄이 딸려 나온다.

거의 조개밭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남열리 바다는 어민들에게는 보물창고. 그래서 이곳은 타지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대신 이곳에서 500여m 떨어진 바다를 개방하고 있다. 남열리 바로 앞바다만큼은 못하지만 이곳에서도 제법 조개 잡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조개를 잡기보다 해수욕하기에 더 좋은 바다다. 모래사장이 드넓고 모래는 쌀가루처럼 곱다. 해수면도 낮아서 안전사고의 위험이 적다. 뒤편으로는 송림이 우거져 야영을 하기 좋다.

남열리 송림도 좋지만 ‘고흥의 숲’ 하면 역시 봉래산 삼나무숲이다. 고흥 외나로도에 자리한 봉래산 삼나무숲은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만한 산림욕장이다.

우주센터가 건립된 곳으로 잘 알려진 외나로도. 하지만 우주센터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신 5월 7일 준공되는 우주체험센터가 우주에 대한 갈증을 풀어준다.

우주센터와 함께 외나로도를 상징하는 것이 봉래산이고 또 삼나무숲이다. 봉래산은 해발 410m로 나지막한 산. 우주센터 가는 고갯길 우측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KT중계소까지 차가 올라갈 수 있다. 봉래산 등산은 왕복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중계소에서 출발해 삼나무숲과 시름재를 거쳐 정상에 올라 다시 돌아오는 5.4㎞ 코스.

정상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경도 그만이지만 역시 이곳에서는 삼나무숲을 빼놓을 수 없다. 봉래산 삼나무 숲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경 봉래산 자락에 20만 여 평 규모의 시험림으로 조성된 것으로 30m가 넘는 큰 키의 삼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머리를 쑥쑥 빼어들고 있다. 중계소에서 삼나무숲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삼나무숲에는 곳곳에 벤치를 마련해놓아 여유롭게 쉬다 갈 수 있다.

여행 안내

★길잡이: 호남고속국도 주암IC→송광사 방면 27번 국도→벌교→15번· 27번 공통국도→고흥

★잠자리: 남열해수욕장 가는 길인 영남면 양사리에 남포미술관(061-832-0003)이 있다. 이곳은 미술관과 펜션을 겸하는 곳으로 하룻밤 묵어가기 좋다. 팔영산 자연휴양림(061-830-5386) ‘숲속의 집’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먹거리: 고흥군청 근처에 자리한 ‘소문난식당’(061-833-7787)의 서대회무침이 일품. 새콤·달콤·시원한 서대회무침을 먹노라면 술 한잔 생각이 절로 난다. 이 식당은 메생이탕과 금풍셍이(꾸돔·꽃돔) 구이도 유명하다. 생선구이를 주문하면 두 가지를 모두 맛볼 수 있다. ‘황해식당’(061-832-7946)도 ‘강추’한다. 한자리에서 40년 넘게 한정식을 내놓는 집으로 고흥에서 나는 해물이란 해물은 다 상으로 올라온다. 예약은 필수.

★문의: 고흥군청 문화관광포털(http://igoheung.go.kr) 061-830-5114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2007년 5월 4일 (금) 19:24   일요신문
출처 : 조명래
글쓴이 : 야생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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