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금이 있던 자리 ☆

공지영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중에서....

푸르른가을 2011. 5. 2. 12:57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나이를 먹어 좋은 일이 많습니다
조금 무뎌졌고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으며
조금 더 기다릴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 자신에게 그렇습니다
'이젠, 사람이 그럴수도 있지'
하고 말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고통이 와도 언젠가는 설사 조금 오래 걸려도
그것이 지나갈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문득문득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학대가 일어날 수도 있고
비겁한 위인과 순결한 배반자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한다고 꼭 그대를 내곁에 두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잘못된 사랑은 아닐까?
나이를 많이 먹은 지금 나는 고개를 저어봅니다
잘못된 것이었다 해도 그것 역시 사랑일 수는 없을까요?


그것이 비참하고 쓸쓸하고 뒤돌아보고 싶지 않은
현실만 남기고 끝났다 해도 나는 그것을 이제
사랑이었다고 이름 붙여주고 싶습니다
나를 버리고......


인간의 기억이란 이토록 끈질기며
이기적이란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다만 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직 다 용서할 수 없다해도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다행입니다


우리 생애 한 번이라도 진정한 용서를 이룰 수
있다면그 힘겨운 피안에 다다를 수 있다면
기억 위로 세월이 덮이면
때로는 그것이 추억이 될 테지요


삶은 우리에게 가끔 깨우쳐 줍니다
머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마음이 주인이라고


- 공지영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