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금이 있던 자리 ☆

강수 -가는 귀 먹었다 -

푸르른가을 2011. 5. 1. 00:44

+ 가는 귀 먹었다

내 귀는 잘 들리지 않아…… 가는 귀 먹었다
의사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데…… 나 혼자만 가는 귀 먹었다
소리가 들리거든 손을 드세요
째깍째깍…… 왼손
째깍째깍…… 오른손
이상이 없다 이상이 없다 …… 가는 귀 먹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가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침묵만 듣는다
초침 움직이는 소리는 잘도 들리더니
나 몰래 속삭이는 소리는 잘도 들리더니
여름날 모기 날개 움직이는 소리까지 잘도 들리더니
내 눈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말하는 당신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가는 귀 먹었다
가는 귀 먹는다… 다시 한 번 먹는다
가끔 침묵만 듣는 내 귀가
먹어도 먹어도 나를 배고프게 한다
배부르게 살고 싶다…… 당신을 먹고 싶다
(강수·시인,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