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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시 관곡지 - 연꽃 -

푸르른가을 2011. 7. 21. 17:00

"광명사거리" 지하철 역에서 10시 30분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아침부터 부랴 부랴 준비를 하고,

 열심히 뛰고 걷고 버스타고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니 약속시간에 늦을것 같아서 미리 문자를 드리고 나서,

만나기로 한 4번 출구 맥도날드 정거장 옆에서 만난 시간이  11시 즈음이었나.. 조금 넘었나..

아침을 잔득 먹고 출발 했는데도, 거기까지 가다보니 저질체력은 기진맥진.

다행히 언니가 사과쥬스를 얼음에 얼려 가지고 오셔서(배려 고맙습니다~)

 차에 타자 마자 건네 주셔서 그걸로 체력 충전하고↑더위도 싸악 가시고↓

관곡지로 출발~~~~>

 

 

 

 

↑부레옥잠(수련과) - 노랗고 조그맣한 꽃이 피는 부레옥잠, 다른쪽에서 미오끼 언니가 찍으라고 하셔서        찍었는데 실수로 삭제해 버렸다.↑

 

 

 

 

 

 

 

 

                                                                     금개구리 라고 하던데, 황금빛으로 보이시나요? ㅎ

 

 

 

 

 

 

 

 

 

 

 

 

 

 

 

 

 

 

 

 

 

 

 

 

 

 

 

 

 

토란잎을 닮은 연잎(어렸을적 비오는 날이나, 더운 여름날 잎을 따서 쓰고 다녔던 토란잎, 또르르 굴러가는 물방울이 신기해서 장난치고 놀았었는데......)

 

 

그 땡볕에 언니도 , 나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찍고,

얼린 사과쥬스 품에 품으라고 주셔서 겨드랑이 속에 끼니

더위도 조금 가시고......

 

연꽃이 장관일거란 상상을 하고 갔는데,

긴 장마 탓인지, 아직 때가 일러서 인지,생각에 못 미쳐서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꼭 풍족하게 많이 봐야 맛인가...

피어 있는 몇송이  연꽃님들로도 충분히 좋았다.

 

 

다만, 디카 메모리가 부족해서, 마음놓고 많이 못 찍어서 조금 아쉬웠고,

너무 멀리 피어 있는 꽃들 못 찍어서 아쉽고,

그랬었다.

 

언니랑 옛날쌈밥 집에 가서 맛있는 쌈밥 먹고 정자에서 매실음료 한잔, 커피까지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 나누다가

네비 게이션으로 버스 타는곳 까지 검색해서 데려다 주시고,

거기다가 거기  열심히 장기 두고 계시는 두분께

버스 서는 곳인지 확인까지 해주시고, -친절한 미오끼 언니 -

언니는 집 쪽으로 슝~하고

버스 기다렸다가 타고 집으로 오고~

 

아 ! 맞다~

근데 연꽃 향기를 못 맡고 왔네 @..@

 

 

 

관람시기
7월~9월초순
위치
시흥시 하중동 208번지 일원
대중교통
전철/버스
부천역 : 1, 61 (하중동 동아APT 하차)
소사역 : 1-1, 63 (하중동 동아APT 하차)
안산역 : 1, 61 (하중동 동아APT 하차)
오이도역 : 25 (연꽃단지 하차)
영등포역 : 11-2 (하상동 금호APT 하차), 6440(동아성원APT하차)
외곽순환도로
목감I.C -> 시흥시청방향 -> 물왕저수지 -> 수경주유소(우회전) -> 관곡지 이정표 안내
시흥I.C -> 시흥시청방향 -> 신천동 -> 포동 -> 관곡지 이정표 안내
영동고속도로
서안산I.C -> 시청방향 -> 관곡지 이정표 안내
제2경인고속도로
시흥I.C -> 월곶방향 -> 시흥시청 -> 목감방향 -> 관곡지 이정표 안내
자가용
수도권 외곽순환도로 시흥 IC - 시청 방향 - 하중동
서해안고속도 월곳IC - 시청방향 - 하중동
대표음식
물왕동 연정식, 연쌈밥, 연갈비찜
관광자료
조선전기의 명신이며 농학자로 이름이 높은 강희맹(1424-1483) 선생과 인연이 깊은 연못이다.
평소 농학 발전에 대해 깊은 연구와 관심을 기울였던 선생은 세조 9년(1463년)에 중추원 부사로 진헌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오게 되었다. 중국에서 돌아올때 남경에 있는 전당지에서 연꽃 씨를 채취해 귀국한 후, 하중동 관곡에 있는 연못에 재배를 해본 결과 점차 널리 퍼질수 있었다.
매년 7월경 관곡지는 연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정경을 볼수 있다. 관곡지 주변에는 연꽃테마파크가 조성되어 있어 관곡지와 함께 아름다운 연꽃의 향연을 제공한다. 연꽃의 개화기간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시기를 잘 맞추어야 한다.
문헌자료
관곡지는 하중동 208번지에 위치한 작은 연못으로서 조선 전기의 유명한 관료인 강희맹 선생 이 명나라 남경(南京)에서 꽃은 흰데 끝부분만 옅은 붉은 빛을 띠는 전당강(錢塘江)의 연꽃씨를 가져다 심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로 말미 암아 지역의 이름을 ‘연꽃고을(蓮城)'이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니 시흥시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장소이다.
더구나 2004년에 관곡지 주변 논에 연꽃을 많이 심어 수도권의 많은 시민들이 찾는 곳이 되었으니, 역사적 유래와 함께 시흥을 홍보하는 좋은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금으로부터 150여년 전인 1846년에 관곡지를 수리하고 쓴 책이 남아 있어 그 의의를 더하고 있다. 그 책이 바로『연지사적(蓮池事蹟)』이다. 『연지사적』의 저자는 당시 안산군수였던 권용정(權用正, 1844년 11월 6일~1848년 6월 25일 재임)이란 분인데, 이 분은 강희맹의 사위로서 관곡지를 소유하게 된 권만형(權曼衡)의 직계 후손이다.
연성정수장을 지나 물왕저수지 쪽으로 가다보면, 비석 세개가 길가에서 있는데, 그중 1848년에 세워진 비석에 “군수권후용정영세불망비(郡守權侯用正永世不忘碑)”라 쓰여져 있다. 여기에 기록된 권용정이 바로 『연지사적』을 쓴 그 분이다.
권용정은 안산군수로 부임한 뒤, 조상의 사적이 깃든 연못(즉, 관곡지)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잡풀이 무성하여 연꽃을 못 살게 하는 것을 보고 1845년 봄에 부역에 동원된 백성들을 시켜 연못을 수리하게 하였다. 수리하고 나니 그 해 여름에 다행히 강희맹 선생이 심은 것과 같은 전당홍(錢塘紅) 두 줄기가 자라났다 한다.
권용정은 관곡지를 잘 관리하기 위해 다른 일체의 부역(賦役)없이 오직 관곡지만 관리하는 연지기 6명을 두도록 하고 이 사실을 경기도 관찰사에게 보고하여 허락을 받아냈다.『연지사적』에는 그 여섯 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도문(李道文), 황차돌(黃次乭), 김춘복(金春福)?황해금(黃海金)?김만돌(金萬乭)?김삼손(金三孫)이 그들이다.
이 여섯 명은 앞에서 말했듯이 일체의 부역은 물론 군역(軍役)과 환곡(還穀)도 면제받는 특혜를 받았고, 그것이 영구히 계속된다는 증명을 경기도 관찰사로부터 받을 정도로 관곡지 관리는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만약 연지기에 결원이 생기면 해당 마을인 하중리의 백성중에서 충원토록 하였는데, 이들에게도 역시 같은 혜택을 주었다.
또 연지기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매를 쳤고(笞刑), 큰 죄를 지으면 쫓아내어 다른 사람으로 대신하도록 한 조항도 마련하였다. 조선 후기에 이처럼 특정한 곳을 관리하기 위해 지키는 사람을 두고, 혜택을 준예가 아직까지 확인된 바 없기 때문에 『연지사적』에 기록된 이러한 내용은 비단 시흥시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를 쓰는 데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한편 관곡지란 명칭에는 약간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각종 지리지 및 관곡지의 현 소유주인 안동권씨 화천군파의 족보에는 모두 이 지역을 직곶(職串)으로 기록하고 있고, 실제 주민들도 ‘베실구지', 또는 ‘벼슬고지'로 부르고 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벼슬(베실)'에 해당하는 한자(漢字)를 ‘직(職)'에서 ‘관(官)'으로, ‘구지(고지)'에 해당하는 한자(漢字)는 ‘곶(串)'에서 ‘곡(谷)'으로 바꾸어 표기함에 따라 ‘관곡지(官谷池)'란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관곡지를 잘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 못지않게, 원래의 이름을 찾아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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