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금이 있던 자리 ☆

이주향 - 내 가슴에 달이 들어 -

푸르른가을 2011. 9. 9. 14:57

소유하고 쌓아 놓는 사랑이 아니라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자기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갈길을 인도해 주는 나눔과 비움의 사랑,
그것은 바로 하얀 보름달로 뜬 사랑의 현현입니다.
...
나는 당신이 친숙합니다.
그렇지만 친숙하게 굴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박탈감도 없으니
이 거리를 즐기는 모양입니다.
당신을 보면 느낍니다.
스스로 충만하고 자족할 줄 알아
무심할 수 있는 어떤 존재가
내 속에도 있을 거라고,
늘 허기지고 어지러워
끊임없이 흔들리는 내 눈에도
당신이 보입니다.
...
오늘은 보름입니다.
당신의 빛이 한층 교교합니다.
그 빛이 교교해서 달맞이 꽃이 열리고
내 마음도 열립니다.
나는 당신을 훔쳐봅니다.
즐겨 훔쳐봅니다.
특히 산사에서 보는 당신은
더욱 그윽하고 더욱 깊이가 있습니다.
...
언제부터 달빛을 사랑하게 됐을까요?
언제부터 당신이 언뜻언뜻
내 마음에 들기 시작했을까요?
언제부터 깨끗하고 정갈한 당신의 빛을
사랑하게 됐을까요?
언제부터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무심으로 충만한 당신의 변화에서
육중한 종소리의 여운 같은 그런 울림을 듣게 됐을까요?
햇빛이 열정이고 무자비한 공명정대함이라면
당신의 빛은 그리움이고 연민이며 공감입니다.
당신이 숲에 들면 숲은 부드러움으로 충만하고
당신이 강물에 들면 강물은 깊어집니다.
해바라기처럼 크고 분명한 꽃이 햇빛의 현현이라면
박꽃처럼 희미한 꽃이 당신의 현현일 겁니다.
...
추신: 나는 인연을 믿습니다.
끌림, 혹은 밀어냄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내 가슴에 달이 들어- 이주향 의 글 중에서...

 

#. 9월8일 밤 낭독의 발견 중에서 이주향님의 낭송 글을 듣고  좀 더 찾아서 올려 본다.


현현 : 현현 [顯現]   [명사] 명백하게 나타나거나 나타냄

교교 : 교교 [咬咬]   [명사] 새가 지저귀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