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금이 있던 자리 ☆

도종환 -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푸르른가을 2011. 8. 3. 17:10

분명히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사랑한다고 말한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 만 것인지 골똘히 생각하는 시간에도
사랑하는 사람은 점점 멀어져 가고 사랑도 빛을 잃어 간다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은 없으며
낡고 때 묻고 시들지 않는 것은 없다

세월의 달력 한 장을 찢으며 벌써 내가 이런 나이가 되다니,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 날이 있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살면서 가장 잡을 수 없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 자신이었다

붙잡아 두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
흘러가고 변해 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늦게 깨닫는 날이 있다
시간도 사랑도 나뭇잎 하나도 어제의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늘 흐르고 쉼 없이 변하고 항상 떠나간다

이 초겨울 아침도,
첫눈도,
그대 사랑도
붙잡아 둘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