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가야할 걸
뭐하러 내려왔니?"
엄마는
시골에 홀로 계신
외할머니의 봄눈입니다.
눈물 글썽한 봄눈입니다.
#. 오늘 수업 시간에 읽은 동시.
유희운님이 어떤 분인지 다음/ 네이버에 다 검색 해봐도 한줄도 안떠서 아쉽다.. 했더니,
싯귀로 검색하니 뜬다.
문학동네동시집 12_맛있는 말
유희윤 시 | 노인경 그림 | 양장본 | 128쪽 | 초등 이상
‘열심’만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정말 열심히 쓰는데
무엇보다 가슴 환하게 하는, 어른이 읽어도 좋을 동시를 쓰고 싶은데
쓸 때는 그런 것 같아 마음 달뜨는데 나중에 읽어 보면 그렇지 못하니 말입니다.
그런 줄 잘 알면서 칭찬은 받고 싶으니 마음은 아직 어린이지요._유희윤
교과서 동시 「봄눈」의 시인 유희윤의 새 동시집
“금방 가야 할 걸 / 뭐 하러 내려왔니.” // 우리 엄마는 // 시골에 홀로 계신 / 외할머니의 봄눈입니다. // 눈물 글썽한 봄눈입니다.
_「봄눈」 전문
7호선 도봉산역에 가면 유희윤의 동시 「봄눈」을 만날 수 있다. 스크린도어에 새겨진 이 짤막한 동시 한 편은
읽는 이의 가슴을 그대로 먹먹하게 만들어 버린다.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도 수록되어 있는 「봄눈」은
유희윤의 대표 동시이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큰 울림을 주는 동시다.
유희윤은 맏딸로, 큰누나로, 아내로, 엄마로 반평생을 살다가 50대 후반에 덜컥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고 만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그녀의 시적 감수성과 진정성은 깊고 아늑하고 뜨거웠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축하한다.” 대신 “많이 못 가르쳐 미안하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이처럼 유희윤의 동시는 수업을 통해
머리로 익힌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가슴속에서 나온 따듯한 온기의 상징인 것이다.
이번 새 동시집 『맛있는 말』에서도 유희윤만의 자애로운 시선과 시심을 만날 수 있다. 작위적인 기교나 상상력을
배제하고도 충분히 새롭고 즐겁고 맛있는 동시를 쓸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직 동시에 대한
열정 하나로 하루하루 동시를 쓰며 살고 있는 시인이 한 상 가득 차려낸 푸짐한 밥상을 기쁘게 받아보자.
엄마가 갓 구워낸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말
유희윤 동시는 인위적으로 첨가하거나 가공하지 않아서 담백하다. 엄마로서 집안일을 돌보고 식구들의 먹거리를
챙기고 아이들을 살피며 얻은 시적 소재로 또박또박 동시를 쓰고 있어서 읽는 이도 편안하다.
너도 / 포도 / 나도 / 포도 // 우린 / 포도 // 나도 / 작고 / 너도 / 작고 // 근데 / 참 크다 // 한 송이 / 우린
_「포도」 전문
더 불래요 / 자꾸만 더 불래요 // 그럴 줄 알았어요 / 풍선이 빵 터졌어요 // 그럴 줄 알았어요 / 으앙, 울음보도 터졌어요
_「아기」 전문
유희윤의 동시에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한껏 느끼고 배우도록 배려하는 자상한 마음이 담겨 있다.
겉멋을 부리지 않으면서도 일상 속의 감동과 잔잔한 재미를 소박한 말로 그려낸다.
비를 맞으며 / 걸어간다 // 아빠 우산 / 내 우산 // 우산에서 / 우를 빼면 // 아빠 산 / 내 산 // 아빠 산은 높고 / 내 산은 낮고 // 낮은 산 앞세우고 / 높은 산 걸어간다
_「우산」 전문
펄펄 끓는 숭어국 / 한 국자 떠 주며 // 잡사 봐! / 잡사 봐! // 후후 / 불어 주며 // 잡사 봐! / 잡사 봐! // 그 참 / 맛있는 말 // 침이 / 꿀떡 넘어가네!
_「맛있는 말」 부분
엄마가 갓 구워준 과자는 과자를 잘 안 먹는 아이들도 잘 먹는다. 유희윤의 동시는 갓 구워낸 과자처럼 바삭하고
신선해서 어느 아이들에게나 맞춤한 자연식이다. 맛있는 말로 가득한 유희윤의 이번 동시집을 통해
우리 아이들도 동시 읽기의 큰 즐거움을 깨칠 수 있을 것이다.
코흘리개 일곱 동생을 둔 큰누나의 치마폭 같은 따듯한 마음
산골 마을에서 태어난 유희윤은 산과 들을 벗 삼으며 코흘리개 일곱 동생을 돌봐야 했던 큰누나다.
동생들에게 양보하느라 양껏 가질 수도, 마음껏 누릴 수도 없었던 큰누나지만 동생들이 아무리 고집을 부리고
떼를 써도 다 보듬어줄 것만 같다. 어린 동생들을 살뜰히 보살피던 유희윤은 지금도 치마폭처럼 넓고 환한
큰누나의 마음으로 동시를 쓰고 있다.
뻥! 뻥! / 강냉이 튀기는 / 뻥튀기 기계 / 이라크에 보내면 좋겠다 // 가서 / 대포 대신 총 대신 / 뻥! 뻥! 뻥! / 신나게 쏘아라 // 화약 대신 총알 대신 / 고소한 강냉이 / 펑펑 쏟아 주라 // 천 대 만 대 / 이라크에 보내면 좋겠다
_「뻥튀기 기계」 전문
진흙으로 과자 구워 / 맛있게도 냠냠…… / 이건 / 아이티 어린이들의 / 소꿉놀이 노래 // 그렇담 얼마나 좋을까 / 진흙 과자 굽는 건 / 놀이가 아니라네 / 노래가 아니라네 // 지진으로 엄마 잃고 아빠 잃은 / 아이티 어린이들 / 진흙 과자 진짜로 먹는다네 / 배가 고파 먹는다네
_「진흙 과자」 부분
어린 동생들을 바라보는 듯한 사랑의 눈길은 저 멀리 이국의 땅까지 닿아 있다. 전쟁과 지진, 메마름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진다.
어디서 들었지? // 쌍시옷으로 / 시작되는 욕 // 엄마랑 눈이 마주치자 / 두 눈 꼭 감네 // 알고 있었나? / 좋은 말이 아닌 줄
_「다섯 살 경환이」 부분
네가 엄마니? / 왜 걱정을 해? / 그깟 숙제 하면 되잖아 / 언제? / 하고 싶을 때 / 하고 싶을 때 하면 / 30분 걸릴 것도 / 10분 안에 / 뚝딱 끝낼 수 있어
_「네가 엄마니?」 부분
유희윤은 소외된 아이만이 아니라 떼쓰는 아이, 욕하는 아이, 고집 부리는 아이도 한 품에 안을 줄 아는
포용력을 갖고 있다. 아이들을 단순히 순진무구한 존재로만 찬양하려 드는 ‘동심천사주의’가 아니라,
세계를 포용하는 따뜻한 시심으로 세상을 보고 시를 쓰기에 가능한 일이다.
유희윤의 네 번째 동시집 『맛있는 말』은 다양한 말맛과 사랑의 눈빛을 고스란히 담은 아주 특별한 동시집이다.
엄마의 마음으로, 큰누나의 마음으로 한 편 한 편 정성스레 써내려간 동시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우리 가슴을
환하게 해준다. 좋은 동시를 읽고 나면 절로 행복해지기도 하고, 절로 코끝이 아릿해지기도 한다.
도전적이거나 직설적인 언어보다 더 강한 유희윤 특유의 시어가 이번 동시집에서도 그 진가를 한껏 발휘하고 있다.
화가 노인경의 다양한 빛깔을 지닌 그림이 시를 더욱 맛있게 물들여준다.
[출처] 맛있는 말 (▒ 문학동네 어린이 ▒) |작성자 옥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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